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no future)
- Winston Churchill -
지구상에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보통은 한 나라의 역사를 쭉 기록으로 남겨놓은 나라를 찾기 힘들고, 그나마 남아 있는 역사적 기록들은 차이는 있지만, 보통을 "승자의 기록"으로 기록이 남겨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나라를 통치하는 집권자들이 이런 역사를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이나 국민을 쉽게 다스리기 위해, 자신들 입맛대로 역사의 기록을 수정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왔었어요.
하지만 결국 역사는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없고, 입맛대로 편하게 기록했다고 해서 실제 있었던 사실이 지워질 수 도 없는 거겠죠? 그래서 겸사 겸사. 이번글에선 왜 중국인들이 그렇게 시끄럽고, 안하무인에, 타인에 민폐라는 생각을 하지도 않고 태연하게 공공장소에서 자기들 멋대로 행동하는지 그 원인도 밝혀지는 밝혀지니 재밌게 보면서 중국이 왜 저렇게 미쳐 지랄하고 있는 건지 알아보도록 할께요.
중국은 애초 시작 자체가 다민족 국가에요. 14억이 넘는 인구가 단일 민족일 수 가 없는거잔아요? 거기다 중국은 땅도 터무니없이 넓구요. 다 잘 알고 있겠지만, 중국의 기원은 인류 문화의 기원과 그 축을 같이 합니다.
세계 3대 문명의 시작인 "황하문명"이전에도 이미 중국은 부족 국가 수준이 아닌 국가를 이루고 있는 나라들이 많았습니다. 무려 기원전부터요. 중국 역사를 훑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한도 끝도 없으니 일단 그건 건너뛰기로 하고.. ㅎㅎㅎ
우선 딱 콕찝어서 이야기하면, 전 세계에서 자신의 나라의 역사를 자신들 손으로 불 싸지른 지구 위에 유일한 나라가 바로 중국이에요. 그것도 3번씩이나 그랬더랬죠, 그래서 중국은 근본이 없습니다.
다민족 국가이면 각 민족별로 고유의 전통이나 역사가 있는데 이것도 싸질러 버렸죠. 그래서 세계 3대 인류 문화 원류의 국가이면서도 문화적 근본이 별로 없는 나라입니다.
이것 때문에, 다른 나라의 문화적 발전이나 유행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콤플렉스를 갖고 있고, 그래서 한국의 문화가 세계에서 대세가 되니까 김치도 자기 들 거, 한복도 자기 들 거라고 우기고 심지어는 일부 스포츠 선수나 영화배우나 가수들 조차 자기 내 나라 사람이라고 생억지를 쓰는 것이거든요
그럼 이 근본 없는 중국이 왜 이렇게 됐냐?
우선 맨 처음 자신들의 역사를 불 싸지른 "분서갱유(기원전 212년~213년)"부터 보고 갈까요?
중국은 기원전 770년~기원전 403년 "춘추시대"와 기원전 403년~기원전 221년 사이 "전국시대"를 '진', '조', '초, '오', '제', '노', '한', '연', '진', '위', '월'등의 국가로 나뉘어 서로 끊임없이 치고받던 시절이 있었어요.
이 시기를 단순히 줄여서 "춘추 5패전국 7웅의 시대" 또는 "춘추전국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이 당시 우리 대한민국은 "고조선 시기" 였죠.
550년간 지속되던 이 '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 246년 "진"나라의 "진시왕"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면서 그 끝을 내리게 돼요, 중국 전체를 통일했다고 해도, 실제로 현재의 지도에서 보는 중국 땅 전체가 아니라 '한', '조', '위', '초', '연', '제'의 이 6개 나라를 통일한 것뿐이지만요.
진시황은 이렇게 6개 나라를 차례대로 멸망시키면서 중국에서 최초로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초강력 수준의 "중앙집권 통치체제를 확립"했어요, 그리고 중국 역사 최초로, 도량형과 화폐, 문자를 통일해서 강력한 국가의 기초를 다지며 진나라를 발전시켜요.
하지만, 영원한 권력이란 존재하지 않듯, 진시황제도 전쟁이 끝나가고 나라가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끊임없는 권력욕과 생명에 대한 탐욕에 매달리기 시작해요, '분서갱유'는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했듯, '분서'라는 사건과 바로 다음 해 벌어진 '갱유'라는 두 사건을 합쳐서 이야기하는 것이랍니다.
'분서(焚書: 책을 불태운 사건)'사건의 발단은, 기원전 213년, 진시황이 '함양궁'에서 베푼 연회에서 진시황에게 아첨하던 "박사 주청신(周靑臣)"과 진시황의 '군현제를 비판'하던 "박사 순우월(淳于越)"의 말싸움에서 시작된 사건이에요.
이 상황을 보고 있던 진시황은 자신에게 반대하는 '순우월'을 괘씸하게 생각했고, "승상 이사(李斯)"에게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합니다. 진시황의 명을 받은 '이사'는 '순우월'이 근본이 지방 유학자 출신이란 걸 이유를 들어 진시왕에게 '유학자들의 주장이 백성들을 혼란에 빠트리며, 진나라의 통치이념을 흐트러 트리며, 종국에는 나라를 망칠 것이다."라고, 진시황에게 보고하죠, 진시황은 유학자들이 백성들에게 '사상'을 퍼트리며 세상을 어지럽히고, 자신의 치세를 막는 존재라고 생각하고는 더 이상 유학자들이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해 1차적으로 유학자들이 보관하거나 갖고 있던 책들을 싹 다 몰수하곤 몽땅 다 불태워 버립니다. 당시 진시왕에게 충성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지방에선 시키지도 않은 것들까지 지방관리들 손에 의해 같이 불태워집니다.
이때 사라진 책들 중에는 진나라 이전의 중국의 고대문화, 역사, 사상등을 담고 있는 다양한 책들과 문화유산이 담겨있는 대량의 책들이 모두 같이 소실 돼버립니다. 예를 들면 지금은 중국 역사서에 기록만 남아있는 '유가(儒家)서적' 이라던가, '제자백가(諸子百家)' 같은 중국문화의 꽃 같은 서적들입니다. 뭐, 당연히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요.
이건 중국 고대역사와 사상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역사 측면에서도 중국의 고대사상과 역사 연구에 너무나 소중한 자료들이 한 권력자의 무식한 권력욕에 통째로 없어진 거죠,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은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억압되는 게 마치 대대손손 대물림 되는 나라가 됩니다.
이 흐름은 기원전인 당시부터 시작돼서 지금까지도 거의 변한 것이 없죠. 어떤 면에선 중국의 가장 오랫동안 보존된 온 가장 큰 유산이 '억압과 탄압' 그리고 '무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사건 이후, 진시왕의 정책을 비판하던 유학자들을 산채로 생매장해서 죽여버리는 "갱유"라는 참극이 벌어지게 되었고요, 이 "분서갱유"로 인해 중국은 진시왕이전의 역사 기록이 남지 않게 되었고, 중국의 역사와 사상의 뿌리 자체가 모두 한 줌 재가 되어 날아가 버립니다.
진시황제가 아주 대차게 치신거져..뭔.. 뭐.. 이렇게 대차게 사고 치신 진시황제도 영생을 꿈꾸며 끝까지 권력욕을 버리지 못하고 말년에 끝까지 온갖 병신짓을 다 골라가며 하다, 끝내 죽어서 제대로 장사도 못 치르고 그의 주검은 썩은 생선 밑에 깔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서 진시황제의 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자 그럼 중국의 역사가 홀랑 재로 변한 "분서갱유"를 끝으로 중국인들은 정신을 차렸을까요?
뭐 그러면 중국이 아니겠죠? ㅎㅎ 네 예상한 대로 똑같은 짓을 또 하게 됩니다.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역사를 홀랑 다 태워버린 "분서갱유"이후에도 중국은 그 긴 세월 동안 끊임없는 전쟁과 분란을 반복하면서 드디어 근 현대로 접어듭니다. 그리고 세계 1차 대전의 혼란한 세계 전세에 휩쓸려 들어가죠.
유럽이 1차 대전으로 다 뒤집어 엎어져 있을 때, 중국은 뭐 했냐 하면요, 당시 중국은 청나라 말기로, 청나라 망조가 제대로 올라오고 있던 시절이에요. 그리고 세계 1차 대전이 끝날 때쯤, 바로 옆나라 러시아에서 "붉은 혁명(1917년)"이 일어나 러시아도 나라가 홀라당 뒤집어져요. 그리고 당연히 국경을 길게 맞대고 있는 중국도 '마르크스-레닌 사상"이 흘러들어옵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서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요.
그리고 이 신해혁명으로 결국 청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나라가 망하고 나니, 남는 건 그 큰 청나라 시절, 여기저기 남아있던 지역 군벌들이 권력욕에 서로 잘났다고 또다시 치고받고를 시작해요.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중국은 다시 춘추전국시대로 돌아간 상태가 됩니다.
서로 자신들이 청나라의 근본을 이어받은 오리지널이라고 하면서 군벌끼리 치받고 싸우는 통에, 사회질서는 다 무너지며, 희망을 잃은 중국인들은 새로운 사상과 정치세력을 찾기 시작합니다. 이 상황에서 "5.4운동(1919년)"이 일어나게 되고, 드디어 1921년 7월 '상하이'에서 '중국 공산당"이 창당합니다. 그리고는 바로 세계 2차 대전이란 커다란 전쟁 속에 휘말리게 돼요. 어찌 저찌 2차대전을 연합군 측에서 치르고 나서, 바로 중국 근대판 최신판 내전인 "국공내전(1차: 1927년 8월1일~1936년 12월26일, 2차: 1945년 8월10일~1949년 12월 7일)"이 일어납니다.
'국공내전'의 내용을 여기서 시작하면 또 끝이 없어지니, 자세한 내용을 따로 이야기 하기로 하고, 어쨋든 이 내전은 1949년 12월초에 중국 공산당의 승리로 끝이 나게 되구요. 이 결과, '장재스'는 국민당 사람들과 함깨 지금의 "대만섬"으로 도망가서 '중화민국' 즉 '대만'을 수립하고, 중국에선 '마오쩌뚱'이 이끌던 중국 공산당이 중심이 된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요. 그리고 얼마안가서, 세계역사를 뒤져봐도 다신 없을 마오쩌뚱의 그 멍청한 혁명인 "문화대혁명 (1866년 5월16일~1976년 10월 6일 대략 10여년간 진행됨.)"이 시작되게 됩니다.
우리의 위대한 똥 멍청이 마오쩌뚱이 "문화대혁명"을 시작하게 된 원인은 상당히 복잡해요 그치만 최대한 간단히 정리해 보면, 1950년 후반 마오쩌뚱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설립하고 나서 소련의 영향을 받아 "7년안에 영국을 추월하고 15년 안에 미국을 추월하겠다"라고 선언하면서 '대약진운동'이란걸 시작해요.
"대약진운동"의 알맹이는 '공업'을 빠르게 부흥시켜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세계 제1의 부유한 공산국가로 만들겠다는 마오쩌뚱의 계획이었거든요. 그래서 이 대약진 운동 안에 여러 정책이 각각 진행되었는데, 그 대부분은 중국이 끌어앉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정책들이 대부분 이었답니다. 그 중에서도 마오쩌뚱이 얼마나 무식한 인간이지가 잘 나타나는 정책 대표적 웃픈 예가 '토법고로'라는 정책이죠.
중국을 빨리 공업화 시키려면 철 생산이 무엇보다 필요하잔아요? 그래서 마오쩌뚱은 중국의 모든 마을 마다 '토법고로'라는 철을 융해하기 위한 고로를 만들게하고는 농민들이 이 고로에서 철을 할당량을 주고 어거지로 생산하게 해요. 근데 언뜻 생각해봐도 웃기지않나요? 십 수년간을 농사나 짓던 농민들 보고 갑자기 고로를 만들고는 거기서 철을 만들라고 하면 그게 재대로 되겠어요?
거기다 마을 마다 할당량이 있었는데, 이 할당량을 못 채우면 그 마을은 완전히 아작이 났거든요. 그래서 농민들은 광산에서 철을 캐는게 아니라 눈앞에서 보이는 철로 된 농기구들을 녹여서 철을 만들기 시작해요.
뭐 당연하게 이렇게 만들어지는 철들은 품질은 뭐.. 전혀 쓸 수 없는 '똥철'이고, 거기다 농민들이 이 철을 만든다고 농기구 다 녹여버려서 농사지을 도구도 없어진데다가, 죄다 철 만드는데만 매달려 농사를 하질 않으니 식량은 급격하게 줄어들 수 밖에 없게 되어 있었죠.
거기다 이 토법고로를 하려면 상당한 화력을 내는 연료가 필요한데, 설마 그때 철을 녹인다고 '코크스'같은 연료 썼겠습니까? 눈에 뵈는 나무는 죄다 벌목해서 가져다 쓰죠, 이것 때문에 중국에 있던 크고 울창한 그리고 정말 오래된 천연숲들이 전부다 황무지가 되버렸고, 생태계도 자연스럽게 개판이 되버려요.
자연계는 서로 영향을 주며 순환하게 되어 있는데, 이런 짓을 해놨으니 툭하면 홍수에 산사태는 기본이고, 생태계가 어그러져서 저연 스스로 병충해를 구제하던 능력도 없어지게됩니다. 그래서 또 우리의 똥멍청이 마오쩌뚱은 떨어진 식량을 증산해야 한다며 '저사해운동' 이란 것을 시작합니다.
이 운동에 핵심은 식량을 갉아 먹고, 여러가지 병충해를 옮기는 4가지 해수로 "모기", "쥐", "파리", 그리고 거기에 "참새"를 포함시키고는 각 도시,마을마다 할당량을 정해주고는 그 이상을 잡아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래서 또 우리 무식하신 중국 농민들께선 1년여 만에 참새를 무려 2억마리 넘게 잡아 없애버립니다.
참새는 겉으로 볼때는 낱알을 쪼아먹어서 식량을 축내는 새 갖지만 실제로 참새의 대부분의 먹이는 농사에 해가 되는 해충과 벌래들이거든요. 이런 병해충을 잡아주는 참새를 다 잡아 조져버렸으니, 그것도 2억마리씩이나 말이죠, 병해충들이 얼마나 신났겠어요, 덕분에 중국에서 농업은 완전히 말어처먹어버리게 됩니다.
이 '똥멍청이 마오쩌뚱'의 황당한 정책 덕분에 중국은 1959년부터 기근이 시작되서 1961년까지 약 3년간 병충해와 메뚜기떼에 인한 매우 심각한 기근과 자연재해에 시달리게 되고, 농업 생산량은 터무니 없는 수준까지 내려가 버려요.
가장 최근에 비교적 조사된 자료를 근거로 추정하면 이 때 굶어죽은 아사자만 최소 1,500만명에서 최대 5,500만명까지로 추정하고 있고, 실제로 더많은 7,800만명이상 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보고서도 존재해요.
얼마나 굶주렸으면,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서 그 인육을 먹었던 때도 이 시기가 가장 심했다고 할 정도니까요
결론적으로 우리의 똥멍청이 마오쩌뚱이 벌린 3년간의 '대약진운동'의 결과는 '참담' 그 자체 였어요. 그러나 똥멍청이 마오쩌뚱은 지가 뭘 잘못한 건지도 느끼지도 반성 조차도 하지 않았다고 해요. 인민들이 수 천만명이 아사한다는 보고가 올라오면 "그깟게 뭐가 대수롭다고 자신한테 보고 까지 하냐, 밥이 모자라면 좀 덜먹으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니냐?" 라고 호통을 쳤다고까지 합니다.
상황이 이러니 그 지옥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살고 싶을까요? 당연히 중국에서 도망나와 대만으로 도망가고, 서양에서 들어온 서적들이 퍼저나가며, 인민들은 공산당과 마오쩌뚱을 욕하고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학생들까지 공산당과 마오쩌뚱을 비판하며 반정부 시위까지 일어나게 되요.
당연히 중국정부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정치적 입지도 이제 비빌대가 없어진 위대하신 똥멍청이 마오쩌뚱은 1959년 결국 건강을 핑계로 국가 주석자리에서 물러나고 '류사오치'에게 권력을 이양합니다. 이 때 '류사오치', '덩샤오핑'등의 실용주의 노선이 공산당의 실권을 잡고 경제, 농업정책등을 다시 재편하기 시작해요.
하지만 똥멍청이 마오쩌뚱은 자신의 안위와 권력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천재 였어요. 권력의 실세에서 물러났다고는 해도 실제로 표면적인 것만 그런척 한것 뿐이고 많은 부분에 자신의 뿌리를 내려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마오쩌뚱의 뒤를 이은 류사오치는 너무나 순수한 마음으로 이 똥멍청이 여우새끼 마오쩌뚱의 정책을 대놓고 아주 실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마오쩌뚱이 냈던 정책은 10개중 단한개도 성공하지 못했다. 인민들이 굶어 죽고 인민들이 식인을 했다는 것도 모두 기록에 남을것이다." 라고 까지 말합니다.
이런 류사오치의 행보는 마치 당시 스탈린 사망이후 소련의 지도자가 된 '니키타 후르쇼프'의 "탈 스탈린 정책"과 매우 비슷하게 보여졌거든요. 니키타 후르쇼프는 소련 최고회의 비밀연설에서 스탈린에 대한 개인 숭배, 정치적 숙청, 강제 수용소 시스템등을 거론하고 스탈린의 과오와 범죄를 매우 실랄하게 공개 비판했어요. 그리고 후르쇼프는 스탈린이 추진하던 거의 모든 정책을 발로 탁! 차서 뒤엎어 버리고 산업, 경제 모든 분야에서 개혁을 시도합니다.
이건 소련 사회는 물론 국제사회에도 큰 충격을 주게 됩니다. 스탈린은 생전에 소련에 모든 분야에 있어 신화적 인물로 추앙되고 있었거든요, 신적 존재였던 스탈린이 죽고나서 후르쇼프에 의해 바로 "개자식"으로 강등된데다, 그가 했던 모든 일들이 죄다 썩어빠진 미친짓으로 뒤집어진거였어요.
뭐 후르쇼프가 대단한 소련의 애국자이자 인본주의자여서 그런게 아니라 단순히 소련공산당 안에서 자신의 정치적입지를높이기 위해서 한짓일 뿐이지만요. 어쨋든 똥멍청이 마오쩌뚱은 자신도 스탈린과 똑같이 취급당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끼고있었죠, 근데 뭐 류사오치나 똥멍청이 마오쩌뚱이나 오십보 백보 차이였던가요? 류사오치는 자신이 정권을 잡고 나서 공산당 정권을 비판하는 인민들을 가혹하게 탄압했고, 대약진운동의 실패의 책임을 물어서 수백만명의 당원을 숙청하거나 처형했어요. 당연히 류사오치 정권에 대한 분노가 중국 전체를 덮기 시작했어요.
특히나 베이징 대학과 칭화대학교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가 아주 극렬했었습니다. 류사오치는 이 학생들도 '우파 기회주의자'로 몰아서 엄청나게 탄압합니다. 마오쩌뚱은 이걸 이용하기로 해요. 그래서 우선 학생들이 시위하는 현장에 은근 슬쩍 끼어들어 같이 소리치고 고함지릅니다. 그러면서 아마 중국 최초로 미디어전을 펴기 시작하는데, 당시 중국은 저렴한 라디오가 많이 보급되고 있던 시기였답니다. 그래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자주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하는데 주된 내용은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관습을 모두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평등하고 새로운 새상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주자파를 권력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라고 떠들어대요. 그리고 이런 마오쩌뚱의 주장과 이야기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기 시작합니다.
이시기 패를 읽은 마오쩌뚱은 이렇게 라디오라는 미디어와 자신의 정치적 인맥을 총동원해서 젊은이들과 10대를 꼬드겨 "홍위병"이란 사조직을 만들고 자신에게 정치적 위협이 되는 세력은 모두 "반혁명 세력"이라는 틀을 씌우고는 홍위병들로 하여금 자기 대신 때려잡게 만들어요. 그리고 마오쩌뚱은 이 홍위병들에게 제한 없는 권력을 인정해 줍니다.
실제로 홍위병들이 무슨짓을 하던간에 절대로 건들지 말라고 지시한거죠. 그래서 뭐 걸지적대는게 다 없어진 이 똥대가리 홍위병들은 법위에 서게됐고, 정치적인 말살 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던 사람들도 반혁명 분자라며 억지 누명을 씌워서는 서슴치 않고 폭력을 행사했고, 홍위병이란 이유 만으로 행패를 부리고, 평소 자기들을 힘들게 했다는 이유로 교사들을 처단했고, 타인의 재산을 뺏고, 감금하고 불태워도 아무도 홍위병들을 처벌 할 수가 없었다고 해요. 거기다 똥멍청이 마오쩌뚱은 홍위병들이 먹고 자고 이런데 필요한 재원을 국고 재원에서 꺼내서 지원해 줬답니다.
이 당시 중국인들은 그저 홍위병에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여기 저기 숨죽이고 살아야 했어요. 괜히 홍위병 눈에 잘못 띄거나 찍히기만 해도 홍위병들은 마치 불개미떼 처럼 몰려가서 가족들을 죽이고 높은데서 던져버리고 재산을 뺏고 모두 불태워 버렸거든요. 심지어 어린아이, 노인, 임산부까지도 그냥 다 밟거나 때려 죽였다고 합니다.
이 당시 그나마 중국을 버티고 있던 지식인들과, 교육자, 과학자 대부분이 이 홍위병들에게 살해당했고, 이때 죽임을 당한 희생자의 수는 대략 2천만명을 넘는다고 해요. 그리고 여기서 진짜 또 하나의 중국인들의 개또라이 짓이 발현을 하는데, 마오쩌뚱이 모든것을 혁파하고 새로 바꿔야 한다는 그 한마디 때문에, 홍위병들은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오래된 사찰과 함께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물건과 건물은 모조리 때려 부쉈고 오래된 문학자료, 예술자료, 전통등과 함께 그나마 진시왕뻘짓 때문에 얼마 남아있지도 않은 오래된 서적과 역사의 기록등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받쳐줄 거의 모든 대부분의 자료와 서적, 건물들을 죄다 다 불태워 버렸답니다.
지시황 다음 두번째로 자신들의 손으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지워버린거죠.
이당시 중국의 전통연극이나 음악은 물론, 선조들로 부터 대대로 물려 내려온 요리법이나 관련 자료도 모두 파괴해 버렸어요. 그래서 지금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전통 궁중 요리법 조차 어떤 요리가 메인이고 어떤 순서로 요리가 진행되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하죠. 그래서 지금 우리 한국사람들 중 아직도 중국뽕에 빠져 중국가서 신나게 비싼돈 주고 드시는 그 중국 전통 궁중요리도 다 상상으로 만든 요리지 전통 중국요리가 아니거든요.
이게.. 당시 그나마 남아있던 중국 전통요리를 하던 음식점들을 홍위병들이 들이닥쳐 죄다 급식소로 개조했고 그과정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요리사들이 죽거나 다쳐서 요리업계를 떠났다죠? 아마.. 그래서 지금 대부분의 중국요리는 다 퓨전요리라고 봐야 해요. 모두 다 정확한 자료도 없고, 그걸 전수시켜줄 전문 요리인도 없었기 때문에 상상으로 만든 요리라고 보는게 맞죠.. 거기다 중국 철학의 그 근본이자 아시아 철학의 근본이 된 '공자'의 묘도 파해치고 때려 부숴버렸고, '관우', '제갈량', '악비'등 수많은 호걸영웅들의 묘도 죄다 파해치고 도굴하고, 파묘하고 유골을 꺼내 불태워 갈아서 뿌리고 비석은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고 하죠.
똥멍청이 마오쩌둥에의해 시작되고 그의 수족이 되어 움직였던 '홍위병'에 의해 중국의 고유한 문화유산과 유적, 보물, 역사적 기록들은 대규모로 약탈되었고 파괴되었으며 불태워졌고, 중국의 소중한 문화유산과 역사는 그렇게 모두 자신들의 손에 의해 지워진거랍니다.
그리고 웃기지도 않는 사실은 그당시 '홍위병'이었던 사람들이 지금의 4~50대 중국의 아줌마 아저씨들로, 지금 중국인들이 해외 여행지에서 그렇게 안하무인에 무식하고, 아무대서나 바지벚고 똥, 오줌 싸갈기면서도 잘했다고 꽥꽥돼는 이유는 이들이 바로 그 무식 찬란한, 공중도덕이나 사회교육은 전~혀 받지 못한 마오쩌뚱의 똥개들 '홍위병'들 이었기 때문에 그래요. 중국의 정치도 이 홍위병 하는 짓과 비슷한 이유는 그당시 홍위병 했던 놈들이 지금 중국 정치의 핵심에 앉아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이구요.
지금 중국인들이 왜 안하무인에 지 멋대로 인데다가 타 국가에서 뻔뻔하고 그 나라의 법률과 도덕을 않지키면서 목소리만 큰지 이해가 가시죠?
홍위병 출신들은 기본적으로 배운것이 하나도 없어요.. 교양이나 도덕, 사회적 규범과는 거리가 먼 그냥 먹고 자고 아무대나 똥오줌 갈겨대는 동물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누가 잘못한 걸 잘못했다고 가르치지도 않구요,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그져 조금만 자신들과 다르거나 자신들이 없는걸 상대방이 갖고 있으면 물어뜯기 바쁘죠.. 뭐 이건 진시왕때부터 중국인들 특히 한족의 종특인거 같지만요.
자 그리고 드디어 '시진핑' 중국인들 종특인 역사 지우기, 뒤바꾸기 남에거 가져다 내꺼라고 우기기. 바로 시작합니다.
시진핑은 예전 마오쩌뚱 시절과 달라서그런지 역사지우기도 새련되거 시전하고 있죠, 우선 첫번째 시진핑 주도하에 면밀하게 진행되고 있는건 "역사 서술 통제"에요
시진핑은 이 "역사 서술 통제"를 통해서 중국 공산당의 이제까지의 헛발질들을 미화 시키거나 그들의 역사속에서 아예 지워버리고 있죠, 그리고 이건 중국 공산당 선전부와 정부 기관들이 그들의 교과서, 박물관, 뉴스매체등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진행시키고 있어요
마오쩌뚱의 중국 최대의 실책이고 뻘짓꺼리였던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을 왜곡하거나 축소하고 있어요. 천안문 민주화 운동같은 건 아예 중국 근대화 역사에서 지워져 있답니다.
또한 마오쩌뚱에 저 뻘짓, "문화대혁명"을 재평가해서 자기만의 유리한 스토리를 만들어서 새로운 문화대혁명을 흔히 "중국몽"이란 표현을 들어 우겨대고 있어요. 문화대혁명을 '사회주의 건설의 모색과 곡절을 겪은 발전'이라고 우겨대질 안나, 역사 교과서에선 문화대혁명의 오류와 그 피해사실들을 싹다 지워버렸구요.
'문화 통제 정책'이란것을 적용해서 '중국 특색 사회주의 문화'를 강조하고 전통문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죠. 그리고 이런것들을 통해서 자신이 마오쩌뚱, 덩샤오핑에 이어 중국 공산당 및 중국인민민주주의공확국의 3번째의 위대한 통치자 라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하 저 개또라이 새키)
위에서 진시왕의 위대한 역사지우기 업적(?)과 마오쩌뚱의 뻘짓에의해 생겨난 마오쩌뚱의 개들 "홍위병"들에 의해 중국의 대부분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역사적인 기록, 중국의 고대 철학 사상을 확립한 위인들과 철학가들의 자료와 기념비 적인 과업의 결과물들이 죄다 싹 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라 홀라당 다 태워졌고, 이제 근본도 모르고, 역사도 없는 나라의 통치자인 시진핑은 역사를 전부 그려서 다시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라 죄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대로 개구라 뻥카를 시전하고 있는 겁니다.
중국이 왜 안될 나라고, 맨날 한국의 문화와 모든것에 컴플렉스 투성이고, 죄다 자기꺼라 우겨대며, 중국인들도 극 몰상식에 무식한데다, 스포츠 경기에서 맨날 반칙만 하면서 본인들은 뭐가 잘못된건지 전혀 느끼지도 반성도 않는 그러 쓰레기 인간들인지 이제 이해가 좀 되셨으면 하네요..
중국은 그냥 근본이 없는 나라입니다. 역사도 문화도 예술도 남아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깡통 한족의 그런 쓰레기통 같은 나라랍니다.
[참고 자료]
- Artifact Preservation - CSU ePress
- Cultural Revolution - Wikipedia
- To what extent did the Cultural Revolution "destroy" Chinese culture? : r/history - Reddit
- Cultural Revolution, 50 years on – the pain, passion and power struggle that shaped China today | SCMP News
- Red Guards - Wikipedia
- My Uncle Was a Red Guard in the Cultural Revolution—He Isn't Sorry | ChinaFile
- The Cultural Revolution - The National Archives
- A Brief History of Book Burning, From the Printing Press to Internet Archives | Smithsonian
- Book censorship in China - Wikipedia
- Burning of books | Chinese history - Britannica
- Four Pests campaign - Wikipedia
- Mao and the Sparrows - Przekrój.org
- Of Sparrows and Bull Markets: A Lesson from History - Safal Niveshak
- China's great famine: 40 years later - PMC
- Berkeley study: Historic famine leaves multiple generations vulnerable to infectious disease
- Great Chinese Famine - Wikipedia
- China's Great Leap Forward -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 What Caused The Great Chinese Famine? - Royal Economic Society
- Revisiting the Causes of China's Great Leap Famine after 50 Years:
- The Causes of China's Great Famine, 1959-1961: County-Level Evidence - EconStor
- Six Lessons From the World's Deadliest Environmental Disaster - The Revelator
- The mass killing of this bird caused a great famine in China! - The Times of India
- Great Chinese Famine - Wikipedia
- 중국 공산당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국공 내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마오쩌둥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The Chinese Civil War - The National Archives
- Mao Zedong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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